나의 책이야기/외국소설

에이모 토울스 - 링컨 하이웨이

BeneTTo's 2022. 8. 16. 2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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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밋 왓슷 - 과실치사로 복역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조기석방되어 집으로 돌아와 어머니를 찾아 캘리포니아로 간다
윌리엄스 원장 - 에밋을 짖으로 데려다줌
빌리 - 에밋의 8살 동생
랜섬 - 이웃 목장주. 빌리를 봐줌
샐리 - 랜섬의 딸
더치스 - 에밋의 소년원친구
울리 - 뉴욕 부잣집 아들인 소년원 친구
율리시즈 - 더치스와 울리가 훔쳐간 에밋의 자동차를 찾으러 가던중 만난 흑인 참전용사
존 목사 - 빌리의 돈을 훔치려했던 목사

엄마 돌아가시기 전 몇일전부터 읽었던 책. 엄마 돌아가시는 몇시간전 에이모 토울스의 책들에 대해 올린 글이 있는데, 그런건 나중에 해도 되었는데, 엄마에게 전화나 해서 목소리나 들을걸.

그래서 아부지 팔순때 대구 가져가서 엄마옆에서 읽던 책이 결국은 엄마 돌아가시고 1달여후에 다 읽게 된 책이 되었다.

오늘 facebook에 내가남긴글...
 
그동안 엄마에 대한 여러 감정들의 표현은 기억나지 않는 화남, 잔소리의 귀찮음, 애잔함, 어릴때 커가면서 힘들어 떠넘겼던 괴로움, 부족함의 원망, 남들보다 사랑받았과 관심을 받고 자랐다는 사실을 알았던 기쁨, 가끔 앉아서 과거 성장기에 동생과 나를 체벌하던 이유를 캐물으며 추궁해서 자리피하게 만들었던 웃음이였지만..
지금부턴 모든 수많은 감정들 중에 슲픔이란 하나의 감정 밖에 남지 않았다.
난 내 자신이 대단한줄 알고 살았다. 모든 감정과 상황을 컨트롤하는..
엄마가 너무 보고 싶다.
상황이 말이 안되고 이해도 안된다.
외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뒤 죽음을 깊게 생각했고,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졌다.
엄마를 보고 싶음과 이 상황의 이해안되는 사태를 사무친다는 표현이 가까울 정도로 하루 2~3번씩 피할수 없는 감정의 휨이 강하게 오는데 이 순간 숨막힌다.
도망갈 곳는 갑갑함이 온 몸을 감싼다.
이런 감정의 휨이 오는 시간은 거의 일정하다.
웃긴건 이 모든것이 한방에 사라지게 만드는 약은 울 와이프의 잔소리.
사랑한다 내색시
p50
그날 밤 아버지는 책장에 낙서하고 훼손하는 것은 야만스러운 서고트족이나 하는 짓이라고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했다. 그것은 인간의 가장 신성하고 고귀한 업적 가장 훌륭한 생각과 감정을 기록으로 남겨, 그 생각과 감정이 시대를 뛰어넘어 대대로 공유될 수 있게 하는 능력에 타격을 주는 행위라는 것이었다.
어떤 책에서든 책장을 한 장이라도 찢으면 아버지에게 있어 그것은 신성모독이었다. 더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 책장이 랠프 월도 에머슨의 에세이-아버지가 어떤 책보다도 높이 평가하고 귀히 여기는 책에서 찢어낸 것이라는 사실이었다. 아버지는 그 페이지 하단 가까이에 있는 두 문장에 붉은 잉크로 조심스럽게 밑줄을 그어 놓았다.


모든 사람은 교육을 받는 중에 시샘은 무지한 것이고, 모방은 자살이며, 좋든 싫든 자기 자신을 자신의 운명으로 받아들여야 하며, 드넓은 우주에 좋은 것이 가득하다 할지라도 경작하도록 자신에게 주어진 땅에 힘든 노동을 바치지 않고서는 옥수수 알 한 톨도 얻을 수 없다는 확신에 이르게 되는 때가 있다. 자기 안에 있는 힘은 본질적으로 새로운 것이며,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자기 자신만이 아는데, 그것도 해보기 전까지는 알지 못한다.에밋은 에머슨의 이 구절이 두 가지 의미를 동시에 나타낸다는 것을 즉시 알아차렸다. 첫번째는 변명이었다. 
p136 - 138
아그네스 수녀가 가장 좋아하는 교훈 가운데 하나는 그녀 자신이 '악행의 사슬'이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여러분, 그녀는 엄마 같은태도로 이야기를 시작하곤 했다.
여러분은 살아가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나쁜 짓을 하고, 다른 사람은 여러분에게 나쁜 짓을 할 거예요. 그리고 서로에게 하는 이 나쁜 짓은 여러분의 사슬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한 나쁜 짓은 여러분의 사슬이 될 겁니다. 여러분이 다른 사람에게 한 나쁜 짓은 죄의 형태로 여러분을 얽어매고, 다른 사람이 여러분에게 한 나쁜 짓은 분노의 형태로 여러분을 얽어맬 거예요.  우리 구세주 예수그리스도의 가르침은 그 두 가지 얽매임으로부터 여러분을 해방하기 위해 있는 겁니다. 속죄를 통해 여러분을 죄에서 풀어주고, 용서를 통해 여러분을 분노에서 풀어주기 위해서 말이에요. 여러분은 오직 이 두 가지 사슬에서 자신을 해방시킨 후에야 마음속에 사랑을 품고 한 걸음 한걸음 평온하게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거예요.

당시에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얼마간의 나쁜 짓에 의해 우리의 행동이 방해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내 경험상 나쁜 짓을 하는 경향이 있는 사람들이 항상 가장 먼저 문을 나서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사람이 우리에게 나쁜 짓을 했을 때 왜 우리가 그 사람을 대신해서 짐을 져야 하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나는 한 걸음 한 걸음 평온하게 살아간다는 게 무슨 뜻인지 확실히 이해하지 못했다. 그러나 아그네스 수녀가 종종 얘기했듯이, 주님은 태어날 때부터 우리에게
주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여기신 모든 지혜를 경험이라는 선물을 통해 우리에게 주신다. 아니나 다를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경험은 나로 하여금 아그네스 수녀의 설교를 이해할 수 있게 해주었다.
설라이나에 처음 도착했을 때도 그랬다.
공기는 따뜻하고 낮은 긴, 땅에서 첫 감자를 캐내야 하는 8월이었다. 구약성경 애컬리는 새벽부터 해 질 녘까지 우리에게 일을 시켰으므로 저녁 식사가 끝났을 때 우리가 원하는 것은 깊게 잠드는 것뿐이었다. 그럼에도 일단 소등이 되면 나는 우선 내가 어떻게 설라이나에 오게 되었는지에 관해서 하나하나 쓰라린 일들을 곱씹으며 닭이 울 때까지 변민에 시달릴 때가 많았다

p151
매일매일이 특별한 날
 
p637 - 639
모건에서 뉴욕까지 하루 반 동안의 여행에 꼬박 20시간이 걸렸다.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부담스럽고 고된 운전처럼 보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지금까지 평생토록 20시간을 끊임없이 생각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이번에 나는, 당연한 말일 테지만, 계속 생각하는 것이 움직여 나아가려는 우리의 의지의 신비라는 점을 깨달았다. 모든 증거들이 움직여 나아가려는 의지는 우리 인류만큼이나 오래되었음을 보여주는 것 같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사람들 중에서 예를 들어보자. 그들은 항상 움직이고 있었다. 첫째,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 밖으로 나갔다. 그다음, 저주를 받아 끊임없이 방랑하는 카인이 있고, 대홍수 때 물 위를 떠다닌 노아가 있으며,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약속의 땅을 향해 나아간 모세가 있었다. 이 사람들 중 일부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지 못했고 일부는 은총을 받았지만, 아무튼 그들 모두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신약 성경에 따르면, 우리 주 예수그리스도는 이른바 돌아다니는 사람ㅡ항상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옮겨 다니는 사람이었다. 걸어서든당나귀를 타고서든 천사의 날개를 타고서든 항상 이동하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움직여 나아가려는 의지에 대한 증거는 성경 페이지에 국한되지 않는다. 열살 먹은 아이라면 누구나 일어나서 움직여 나아
가는 것이 인간의 노력의 기록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라는 것을 알수 있다. 빌리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그 커다란 빨간 책을 예로 들어보자, 그 책에는 오랜 세월을 거쳐 전해 내려온 스물여섯 개의 이야기가 들어 있는데, 거의 모든 이야기가 어떤 사람이 어디론가 가는 것에 관한 이야기이다. 정복에 나선 나폴레옹이나 성배를 찾아 떠나는 아서왕이 다 그렇다. 그 책에 나오는 사람들 중 일부는 역사속의 인물이고, 일부는 허구적인 인물이지만, 실제 인물이든 가상인물이든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가 출발한 곳과는 다른 어떤 장소
로 가고 있다. 그런데 움직여 나아가려는 의지가 우리 인류만큼이나 오래되었고 모든 아이들이 그걸 알 수 있다면,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난 걸까? 아버지의 마음의 복도에서 어떤 스위치가 작동해서 하느님이 주신 움직여 이동하려는 의지를 꺼버리고, 그것을 머물러 있으려는 의지로 바꾸어버린 걸까?
기력이 떨어져서 그런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바뀌는 것은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이 늙고 쇠약해질 때 찾아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그런 사람들이 건강하고 원기 왕성하고 활력이 최고에 이르렀을 때 찾아온다. 만약 그들에게 무엇이 그런 변화를 초래했는지 묻는다면, 그들은 미덕의 언어로 포장할 것이다. 그들은 말할 것이다. 아메리칸드림은 정착해서 가정을 꾸리고 정직한삶을 사는 것이라고. 그들은 교회, 로터리클럽, 상공회의소, 그리고 다른 모든 형태의 머물러 있게 하는 기관을 통해서 지역사회와 맺고 있는 자신들의 유대 관계를 자랑스럽게 얘기할 것이다.
그러나 어쩌면, 어쩌면 머물러 있으려는 의지는 인간의 미덕이 아니라 악덕에서 비롯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차를 몰고 허드슨강 위를 지나가면서 생각했다. 결국 식탐, 태만, 탐욕은 다 머물러 있는 것과 관련이 있는 것 아닌가? 그것들은 더 많이 먹을 수 있고, 더 게으름을 피울 수 있고, 더 많은 것을 원할 수 있는 의자에 깊숙이 눌러앉아 있는 것과 상응하지 않는가? 어떤 면에서는 자존심과 시기심도 머물러 있는 것과 관련이 있다. 자존심이 자기 주위에 쌓아 올린 것에 기초하는 것처럼 시기심은 자신의 이웃이 길 건너편에 쌓아 올린 것에 기초하기 때문이다. 사람의 집은 자신의 성이라 할 수 있을 텐데, 그 해자는 내가 보기엔 사람을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데 유용한 것만큼이나 밖으로 나가지 않게 하는 데도 유용하다.

나는 인자하신 하느님께서는 우리들 각자에 대한 사명-우리의 약점을 용서하시고, 우리의 강점에 맞추시고, 오직 우리만을 염두에 두고 설계하신 사명을 가지고 계신다고 믿는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아마도 우리의 문을 노크하고 들어와 케이크에 온통 아이싱을 입히듯 그런 식으로 그 사명을 우리에게 주지는 않으실 것이다. 어쩌면, 어쩌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우리에게 기대하는 것은 우리에게 바라는 것은 - 그분의 독생자와 마찬가지로-우리가 세상으로 나가서 우리 스스로 그것을 찾는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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