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응형
http://joongangdaily.joins.com/
It often happens that a faded picture conveys richer content and a stronger
message than a long novel. The photo taken by an American army sergeant at the
American ambassador’s residence in Tokyo on Sept. 27, 1945 is such an example.
It is picture that records the first encounter between General Douglas
MacArthur, who marched into Japan as the de facto ruler after the end of World
War II, and Emperor Hirohito, who lost his status as a living god and became
human.
It is obvious that the emperor, who stands at attention in the picture, is feeling the strain. The photo was taken when public opinion in many countries that bore the brunt of Japan’s military might called for the Japanese ruler to be prosecuted as a war criminal, so it’s no wonder he was feeling a little tense when he first met MacArthur. The U.S. general had the power to decide the life or death of the Japanese people.
In the picture, MacArthur, who is a head taller than the emperor, overwhelms the Japanese ruler with his large build. The posture of MacArthur, who poses with slightly bent legs, his hands in the pockets of his plain clothes without a tie, nevertheless gives a dignified impression, while the emperor bears an expression of humiliation. He had probably rarely had his photo taken, and his discomfort is palpable.
There were three shots altogether, but in the first the Japanese leader had his eyes closed and in the second one, his mouth was open.
The Japanese press refused to carry the photo because carrying photos of their leader was thought to be disrespectful to him, but they had to obey the orders of the office of the occupation. The Japanese people who worshiped their leader unconditionally as a living god were shocked to see that their emperor cut such a dwarfish figure. The shock was followed by the painful awareness that Japan was a defeated nation and the fear that “on top of the god is MacArthur.” That was exactly what MacArthur intended to instill in the minds of the Japanese.
Now, 60 years later, another photo has decorated the world media. This time it is a photo of U.S. President Barack Obama bowing to the Japanese emperor, bending his upper body almost 90 degrees.
It seems that the Japanese, who were shocked at the photo of Hirohito being overwhelmed by MacArthur, are now moved and have a good impression. President Obama has succeeded in winning the minds of the Japanese with this photograph. In the United States, however, there is a controversy whether it was proper according to diplomatic protocol or an improper act for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Diplomatic protocol is something that is complicated beyond all bounds and has no exact answer. It is an art, not a science.
There is some reason to say that excessive courtesy can be discourtesy. But I am of the opinion that the evaluation of the incident should be made on the grounds of whether one succeeded in winning the minds of the other side or not.
Obama’s bow, for that reason, was well executed.
The writer is a deputy politic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Yeh Young-june
프로토콜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 대하소설보다 풍부한 사연과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 1949년 9월 27일 오전 도쿄의 주일 미 대사관저에서 미군 상사가 촬영한 이 사진도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일본의 새로운 통치자로 진주해 온 더글러스 맥아더와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된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첫 만남을 기록한 사진이다.
부동자세를 취한 사진 속의 일왕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일왕을 전범으로 기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연합국 내에 비등하던 무렵 생살여탈권을 쥔 맥아더와 처음 만났으니, 정녕 그가 신이 아닌 이상 왜 아니 그랬겠는가. 일왕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맥아더는 체격만으로도 일왕을 압도하고 남았다. 노타이에 평상복 차림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짝다리 자세로 서 있는 맥아더의 자세는 또 어떤가. 승자의 당당함과 패자의 굴욕이 고스란히 묻어 나지 않는가. 아마 일왕은 그때까지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자세로 세 컷을 찍었는데 첫 컷은 일왕이 눈을 감았고, 둘째 컷에선 일왕이 입을 벌렸다.
일본 언론들은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처음엔 사진 게재를 거부했지만 연합군 사령부(GHQ)에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불과 한 달 보름 전까지 살아있는 신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일왕의 한없이 왜소한 모습을 목도한 일본 국민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충격과 함께 다가온 것은 패전에 대한 뼈아픈 자각과 “신 위에 맥아더가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그건 바로 맥아더 사령부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또 한 장의 사진이 세계 각국의 언론 매체를 장식했다. 이번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히토의 아들 아키히토(明仁) 일왕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는 장면이다.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사진에 충격을 받았던 일본 국민이 이번엔 신선한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오바마는 이 사진 한 장으로 일본인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당당해야 할 미국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외교 프로토콜에 부합하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따지고 들면 한없이 복잡하고 정답이 없는 게 외교 프로토콜이다. 과공비례를 탓하는 것도 일리가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샀느냐 그러지 못했느냐의 잣대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
최근에 우연히 발견한 곳이다.
영문 기사와 함께 영문 듣기를 주요 헤드라인과 사설을 MP3로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그중에 내가 제일 좋아하는 건...Bilingual column 이다.
이건 영문과 해석과 MP3모두를 동시에 제공하고 있다.
다른 분들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It is obvious that the emperor, who stands at attention in the picture, is feeling the strain. The photo was taken when public opinion in many countries that bore the brunt of Japan’s military might called for the Japanese ruler to be prosecuted as a war criminal, so it’s no wonder he was feeling a little tense when he first met MacArthur. The U.S. general had the power to decide the life or death of the Japanese people.
In the picture, MacArthur, who is a head taller than the emperor, overwhelms the Japanese ruler with his large build. The posture of MacArthur, who poses with slightly bent legs, his hands in the pockets of his plain clothes without a tie, nevertheless gives a dignified impression, while the emperor bears an expression of humiliation. He had probably rarely had his photo taken, and his discomfort is palpable.
There were three shots altogether, but in the first the Japanese leader had his eyes closed and in the second one, his mouth was open.
The Japanese press refused to carry the photo because carrying photos of their leader was thought to be disrespectful to him, but they had to obey the orders of the office of the occupation. The Japanese people who worshiped their leader unconditionally as a living god were shocked to see that their emperor cut such a dwarfish figure. The shock was followed by the painful awareness that Japan was a defeated nation and the fear that “on top of the god is MacArthur.” That was exactly what MacArthur intended to instill in the minds of the Japanese.
Now, 60 years later, another photo has decorated the world media. This time it is a photo of U.S. President Barack Obama bowing to the Japanese emperor, bending his upper body almost 90 degrees.
It seems that the Japanese, who were shocked at the photo of Hirohito being overwhelmed by MacArthur, are now moved and have a good impression. President Obama has succeeded in winning the minds of the Japanese with this photograph. In the United States, however, there is a controversy whether it was proper according to diplomatic protocol or an improper act for the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
Diplomatic protocol is something that is complicated beyond all bounds and has no exact answer. It is an art, not a science.
There is some reason to say that excessive courtesy can be discourtesy. But I am of the opinion that the evaluation of the incident should be made on the grounds of whether one succeeded in winning the minds of the other side or not.
Obama’s bow, for that reason, was well executed.
The writer is a deputy political news editor of the JoongAng Ilbo.
By Yeh Young-june
프로토콜
빛바랜 한 장의 사진이 대하소설보다 풍부한 사연과 강렬한 메시지를 주는 경우가 더러 있다. 1949년 9월 27일 오전 도쿄의 주일 미 대사관저에서 미군 상사가 촬영한 이 사진도 마찬가지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 일본의 새로운 통치자로 진주해 온 더글러스 맥아더와 ‘신’에서 ‘인간’으로 강등된 일왕 히로히토(裕仁)의 첫 만남을 기록한 사진이다.
부동자세를 취한 사진 속의 일왕은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일왕을 전범으로 기소해야 한다는 여론이 연합국 내에 비등하던 무렵 생살여탈권을 쥔 맥아더와 처음 만났으니, 정녕 그가 신이 아닌 이상 왜 아니 그랬겠는가. 일왕보다 머리 하나는 더 큰 맥아더는 체격만으로도 일왕을 압도하고 남았다. 노타이에 평상복 차림으로 호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짝다리 자세로 서 있는 맥아더의 자세는 또 어떤가. 승자의 당당함과 패자의 굴욕이 고스란히 묻어 나지 않는가. 아마 일왕은 그때까지 사진을 찍어 본 경험이 그리 많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자세로 세 컷을 찍었는데 첫 컷은 일왕이 눈을 감았고, 둘째 컷에선 일왕이 입을 벌렸다.
일본 언론들은 불경스럽다는 이유로 처음엔 사진 게재를 거부했지만 연합군 사령부(GHQ)에 두 손 들 수밖에 없었다. 불과 한 달 보름 전까지 살아있는 신으로 믿어 의심하지 않았던 일왕의 한없이 왜소한 모습을 목도한 일본 국민은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충격과 함께 다가온 것은 패전에 대한 뼈아픈 자각과 “신 위에 맥아더가 있다”는 두려움이었다. 그건 바로 맥아더 사령부가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6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른 지금 또 한 장의 사진이 세계 각국의 언론 매체를 장식했다. 이번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히로히토의 아들 아키히토(明仁) 일왕에게 허리를 90도로 굽혀 인사하는 장면이다. 맥아더와 히로히토의 사진에 충격을 받았던 일본 국민이 이번엔 신선한 감동을 받은 모양이다. 오바마는 이 사진 한 장으로 일본인의 마음을 사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정작 미국에서는 “당당해야 할 미국 대통령으로서 부적절한 행동”이라며 외교 프로토콜에 부합하느냐는 논란이 일고 있다. 따지고 들면 한없이 복잡하고 정답이 없는 게 외교 프로토콜이다. 과공비례를 탓하는 것도 일리가 없진 않지만, 그보다는 상대방의 마음을 샀느냐 그러지 못했느냐의 잣대로 평가해야 하지 않을까.
예영준 정치부문 차장
반응형